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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단상

해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단상

 

서해안의 내 고향마을은 바다 가까이에, 아니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5.16군사혁명 직후 첫 삽을 뜬 이래, 겹겹의 간척사업으로 지금은 바다가

멀어졌지만, 내가 어릴 때는 고향집 뒷동산 넘어 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그 때는 미처 몰랐던, 참으로 아담하고 정겨운 바다였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여름 이맘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단상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채 영글기 전의 옥수수를 따다가 찌면, 어찌 그리도 맛이 있었던지,

모두들 늘 배가 채워지지 않았던 그 시절, 찐 감자에 옥수수 몇 자루를

거푸 먹고 나면, 배가 불룩해지면서 영락없이 찾아오는 손님이 설사다.

 

다음엔 한 자루, 아니 한 자루 반만 먹어야지 하며 아픈 배를 달래보지만,

지켜지지 않을 결심이란 걸 확인하는 데는, 그리 여러 날이 걸리지 않았다.

그새 잊은 것도 아니건만, 세 자루를 넘겨 먹으니 참을 수 없는 설사는

비껴가는 법이 없다. 늦참외나 복숭아를 먹을 수 있으면 운 좋은 날이다.

 

소에게 먹일 풀을 베는 일이 너무너무 힘들어 꾀라도 부릴라치면,

대신에 들판이나 산언저리로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뜯어먹도록 해야 한다.

풀을 좀 빨리 뜯어먹었으면 하는 내 맘은 아랑 곳 하지 않고, 느릿느릿

한결같으니, 늦여름의 찌는 더위를 견뎌야하는 일각이 여삼추의 시간이다.

 

어느 날인가 소가 나지막한 둑 아래에서, 여느 날처럼 풀을 뜯고 있었다.

내 무릎높이의 소등높이가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무모한 치기 발동이

나를 소잔등에 올려 태웠다. 이 돌발 사태에 놀란 소가 거부의 몸짓으로

펄쩍 뛰니, 땅에 떨어지며 삔 내 왼 팔목에는 아직도 그 상흔이 남아있다.

 

놀이터가 없으니 놀이기구가 있을 리 만무한 그야말로 깡촌의 시골아이들,

낭창낭창한 가지를 길게 뻗은 뒷동산 느티나무에 올라 가지타고 내려오기를

몇 번 하다보면, 윗가지타기 유혹을 떨치기 어려워 용감하게 시도를 한다.

어럽쇼, 가지 끝이건만 대롱대롱 땅바닥은 구만리 진퇴양난의 현장이다.

 

덩치 큰 친구나 이웃 형이 그 가지를 올라타 조금이라도 높이를 낮춰주면

그들이 바로 구세주에 다름 아니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울음을 터뜨리며

떨어지다 발목을 다쳐 쩔뚝일 때는, 두 번 다시 안 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머지않아 까맣게 잊는다. 실은 그 유혹을 떨쳐버릴 길이 달리 없기도 하다.

 

밤이면 마당에 나가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쑥으로 모깃불을 피운다.

어린 나에게는 그 냄새가 독하다보니 차라리 모기에 물리는 게 낫겠다며

연기를 피하면, 모기란 녀석이 잽싸게 날아와 그 생각을 바꾸게 한다.

밤하늘의 찬란한 별빛이 가슴을 설레게 했었는지는 별로 기억이 없다.


여름방학도 끝나가면서 미루고 미뤄놓은 숙제가 어깨와 가슴을 짓누른다.

멀리 떨어진 동네의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 공부는 하기 싫은데 방학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인지 압박감인지 서러움인지, 어리고 여린 가슴에 담긴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주체할 길 없어, 횅하니 뒷동산을 뛰듯 오른다.

 

뒷동산 아래 바다 건너 저 멀리, 야트막한 산등성이 배경의 무대에는,

저녁 무렵이면 늘 그렇듯이, 어느 날은 석양이 작별인사를 하고, 또 다른

어느 날은 서편 하늘을 물들인 노을이, 작은 산을 삼키고 바다에 깔리며

무고한 가슴을 파고들면, 공연스레 까닭모를 서러움이 북받쳐 오른다.

 

가는 여름 안타까워 맴맴맴 매애엠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하루가 저물고,

아니 질세라 쓰람쓰람 쓰르르 추임새 넣듯 쓰르라미도 한껏 목청을 돋우니,

녀석들이 올라앉은 느티나무가, 스쳐가는 바람에 살랑살랑 장단을 맞춘다.

매미랑 쓰르라미 울음소리를 타고, 저무는 여름이 가던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는 여름이, 아니 끝나가는 방학이 서운하고 서럽기도 하지만, 때 이른

추석과 가을 운동회가 기다려진다. 한가위에 동네에서 돼지라도 잡는 해는

아이들이 모여들어 축구공 대용의 돼지 오줌보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툰다.

운동회 때는 진짜 축구공을 마음껏 찰 수 있으니 어찌 기다려지지 않으랴.

 

돼지를 잡지 못하는 해는 새끼줄을 둘둘 말아 공을 만든 다음 물에 축여

공차기를 하다보면, 몇 번 차지도 않아 풀어지곤 한다. 하지만 어쩌랴,

놀 거리가 그뿐인 것을. 그렇다, 그때 그곳이 내가 살던 깡촌 시골이었다.

밤이면 딱 2대 뿐인 라디오 앞에 멍석을 깔고 사람들이 모여들던 동네..

 

꽁꽁 얼었던 땅이 풀리고 개학을 한 이른 봄이면, 꼬맹이 초등학생에게는

너무나 먼 길을 지각하지 않으려 뛰다보면, 황토 흙이 등 뒤 온몸을 덮는다.

찐득한 흙에 들러붙는 고무신을 가는 새끼줄로 묶고 다니던 그때 그 시절,

그래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던 그곳이 내 고향이다,

 

파리는 낮잠을 모기는 밤잠을 방해하던, 겨울이면 덜덜 떨며 고양이 세수에,

보온과는 애당초 아랑 곳 없던 뒷간 가기란, 고역 중의 고역이 아니었던가.

하루하루의 삶이 다였기에 무심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도 가슴속 어디엔가

숨겨진 어렴풋한 작은 꿈을 가꾸던, 정겨운 추억이 깃든 그 시절이 그립다.

 

2020.8.25.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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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몇 자루에 설사 공감합니다.
    전 가끔 찐 옥수수 몇 개 먹고 장 청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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