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조명일(33회, 서울고 교사)
- 서울고총동창회(0)
- 2019.05.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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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울고의 정문에는 그가 서 있다"
8년째 모교에서 교편 잡고 있는 조명일 동문
서울고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변곡점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서초동 교사로 이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고교 입시가 폐지돼 추첨을 통해 고등학교를 배정받는 고교 평준화도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서울고만의 특이한 사건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학교가 서초동으로 이전한 것이 30년을 훨씬 넘어서면서, 이제는 경희궁터의 옛 교정에서 졸업한 동문보다 서초동에서 졸업한 동문이 더 많은 실정이다.
경희궁터의 옛 교정은 이제 연식(?)이 제법 된 동문들에게만 화제가 되는 빛바랜 추억거리가 됐다.
다른 동문들에게도 그렇지만 유난히 33회 동문들에게 서초동 교사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서초동 교사에서 처음 졸업장을 받은 기수이기 때문이다.
33회 동문들은 2년 반 동안 옛 경희궁 교정에서 학교를 다니고 단 한 학기만을 새로 이전한 서초동 교사에서 다닌 기수다. 그래서 경희궁 교정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남다르다.
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3학년 2학기를 전혀 다른 환경에서 그것도 주변에 논과 밭뿐인 허허벌판 같은 곳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물론 지금 학부모들 같으면 교육청에 찾아가 결사반대를 했을 것이고, 아마 학교 이전은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교육당국의 방침에 학부모들이 반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어서, 서초동 이전은 큰 어려움 없이 이뤄졌다.
33회 동문들에게 서초동 교사는 현대식으로 지어진 멋진 곳이기도 했지만, 낯설고 비좁고 정을 붙이기에는 너무 먼 그런 곳이기도 했다.그 서초동 교사에서 첫 졸업한 동문이 교사로 일하고 있다.
33회 조명일 동문이다. 조 동문은 필자와 함께 1980년 책상과 걸상을 들고 나르며 서초동 이전을 함께 했던 같은 반 친구이기도 하다.
조 동문은 현재 유일한 동문 교사이자, 학생생활지원부장이다. 지리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조명일 동문은 8년째 서울고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공립학교 교사의 한 학교 평균 근속연수가 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근무연한을 3년째 넘기고 있는 셈이다.
조명일 동문은 학생생활지원부장이라는 직책 외에 2년 전에 개관한 서울고 역사관을 관리하는 업무도 함께 맡고 있다.
역사관을 관리하는 직책이나 직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사실상 봉사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2년 전에 개관한 서울고 역사관은 다른 학교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설이다.
국내외에서 큰 역할을 담당한 서울고 동문이나 스포츠 분야의 우승 같은 서울고의 명예를 드높인 발자취를 모아 놓은 곳이다. 경희궁터였던 옛 교정의 모습과 추억도 많이 담겨 있다.
이 곳은 교육청의 예산지원도 있었지만, 동문들의 지원과 노력이 더해져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역사관으로 탄생했다.
특히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명일 동문은 자료수집과 데이터화, 세세한 인테리어까지 직접 관여해 역사관을 건립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뿐만 아니라 역사관을 찾는 동문들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현재 서울고 역사관에는 동문들의 발걸음이 일주일에 평균 10여 건씩 이어지고 있어, 조 동문은 방학기간은 물론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나와 찾아오는 동문들을 맞고 있다.
서울고 동문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고 역사관은 국내의 동문들은 물론 해외에 있는 동문들도 찾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찾아오는 동문들도 적지 않다.
힘들지 않냐는 우문(愚問)에 ‘동문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을 당연히 하는 것뿐’이라는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조명일 동문의 헌신적인 희생이 없었다면 서울고 역사관은 말 그대로 이름뿐인 유명무실한 장소로 전락했을 것이 분명하다.조 동문은 학생생활지원부장을 맡고 있다. 예전의 학생주임이다.
다른 학교도 그랬지만, 7,80년대 고등학교 학생주임 선생님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서울고처럼 학교 규율이 엄한 학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유난히 짧은 머리, 주머니 없는 교복, 여름이면 매일 바꿔야 하는 풀 먹인 ‘카라’, 심지어 추운 겨울에도 외투를 입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아침 등교 시간에는 학생주임 선생님과 일렬로 늘어선 규율부 선배들의 ‘검열’을 통과해야 교실로 갈 수 있었다.
예전 학생주임의 역할이 지금 조 동문이 맡고 있는 학생생활지원부장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엄격한 규율 지도는 상상도 할 수 없을뿐더러, 교권이 많이 추락한 요즘에는 오히려 자식들을 과보호하려는 일부 학부모들 때문에 힘든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서울고는 그래도 인근의 다른 학교에 비해 훨씬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는 것이 조 동문의 설명이다.
학생들의 ‘사고’ 빈도도 훨씬 낮고, 지나친 교육열에 휩싸여 간섭이 심한 학부모들도 많지 않다고 한다.
조 동문은 그 이유를 서울고의 교훈처럼 ‘책임 지키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으로 분석했다.
조 동문이 학생생활지원부장을 맡은 것이 벌써 3년째다. 그는 학생생활지원부장을 맡으면서 다짐을 두 가지 했다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새벽 6시 40분에 출근해 정문에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한다. 매일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는 인근을 순찰 지도한다.
교문지도라고 해 봐야 예전 같은 엄한 지도가 아니라, 학생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인사를 나누고, 승용차로 정문을 통과해 교실 앞까지 아들을 등교시키려는 억지 부리는 학부모를 막아서며 타이르는 것이 고작이다.
3년 동안 그는 이 일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다.
서울고가 일반고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좋은 대입 성적을 올리고, ‘사고’ 치는 학생 없이 모범적인 학창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책임 지키자’는 교훈을 몸으로 실천하는 동문 교사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자신의 출신 학교에서 교사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서울고처럼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의 교사는 더 그렇다.
동문 교사가 몇 년째 단 한 명뿐이라는 점이 그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그는 근무기간을 3년이나 연장하면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근무기간 연장은 특혜가 아니라 희생이다.
이제 개학을 앞두고 있다.
그러면 그는 언제나 그렇듯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울고의 정문에 서 있을 것이다.
조명일 선생님. 그는 자랑스러운 내 친구이기도 하다.
글_ 문영기(33회) 편집위원 / 사진_ 김신기(54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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