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듣는다 - 심양홍(14회) 배우

“술값재천, 술값은 하늘에 있다 이거야.
그냥 마시기만 하면 됐었어”
심양홍’ 동문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따라서 이순재, 신영균 등과 같이 고학력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라고 나온다.
80, 90년대 전국의 시청자를 웃고 울게 했던 <한지붕 세가족>, <그대 그리고 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와 같은 가족 드라마에서 친숙한 ‘아저씨’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심양홍 동문은 우리 학교 14회 졸업생이다.
필자와는 ‘서울고등학교 문화예술인모임’을 통해 두세 번 만남이 있던 사이라서, 재미있는 인터뷰를 기대하며 여의도 KBS 별관 커피숍에서 심 동문을 마주했다.
동창회보 기사를 위한 인터뷰 인지라, 편안한 분위기에서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다.
저는 심양홍 하면 <한지붕 세가족>이나 <그대 그리고 나>가 생각납니다만...
“그건 나도 그래. <한지붕 세가족>이 제일 생각나지. 가장 떴지. 그땐 다들 잘 살았어. 먹고 살만 했고 같이 어울리면서 살려고 하는 풍조도 있고 그래서 드라마가 뜬 거 같아”라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1년 드라마 <제1공화국>의 유진산 총재역으로 출연했을 때야. 20대 후반이었지. 그때 40대의 유진산 역을 한 거지. 그게 데뷔작이야. 그리고 주목받은 건 83년에 <야먕의 25시>라고 했는데 거기서 가정교사로 나와서 ‘술만 먹갔시오’라는 유행어로 잘 나가려는데 겨우 세달만에 끝났지. 외압이지 뭐. 그때 떴으면 스타가 되었을 건데... 하하하”
<야망의 25시> 기업인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을 모델로 제작 방영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드라마’로 전두환 정권 때 ‘대통령의 지시’라는 이유로 3개월 만에 종방 되는 불운한 드라마였다.
심 동문은 사채업자 김유장의 아들 수민(길용우)의 가정교사로 출연해, 열연하던 중이었으니 그 또한 불행을 겪은 셈이다. 내친김에 또 하나의 ‘불행한 출연작’을 이야기한다.
“<3김시대>라고 SBS에서 방송을 했는데 말이야. 그때 내가 핵심이었다고 유진산 역으로.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 당대의 정치가들을 아우르는 역할이었는데, 근데 뜨질 않는 거야. 젊은 시청자들이 유진산을 모르는 거야. 시대가 많이 지난 거지. 지금 생각해도 내가 불행했던 거 같아. 그게 떴으면 내가 한가할 일이 없었지.”
심 동문의 말투는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급한 듯 빠르게 내뱉으며 또박하게 발음한다. 그리고는 ‘허허’, ‘하하’라고 탄식처럼 독백처럼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은 드라마에서 봐왔던 딱 그 모습이다.
 
서울고등학교 때는 조용한 학생,
서울대 문리대학 연극부에 살다시피

서울고등학교 시절은 조용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영천으로, 예천으로 여기저기 피난 생활을 하면서 전쟁 후에 서울에서 자랐다.
“나는 조용한 학생이었어. 눈에 띄지도 않고, 고등학교 때 클럽 가입하고 활동하잖아. 삼국지 클럽 들어가서 토의하고 그랬다고. 우리 때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책이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The Outsider, 1956)였어. 아웃사이더 클럽을 10년 정도 했지.  나는 아웃사이더다! 라고 외치는 수백만의 청소년 중에 하나였지.”
고3 때 서울고 운동장에서 해사를 다니던 선배들 2명이 제복을 입고 온 모습에 반해 해사를 지원했다. 하얀 옷에 까만 팔뚝이 어찌나 멋있었는지,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라고 하면서 해사를 자랑했던 강인한 모습이 멋있었는지 문과에서 이과로 전과하고 3개월 공부해서 해사를 갔다. 그러나, 졸업하지 못하고 중간에 퇴교했다.
“해사를 그만두면서 연극을 하게 되었어. 동시 상영관에서 영화 보고 해가 져서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했지. 그리고 서울대 문리대에 진학하여 또 연극을 했지. 그것이 나의 운명이다 이거야.”
“그러니까요, 학력이 서울대 국문학과시던데요?”라고 필자가 재차 질문하자, “실제 학적만 있었지. 전부 연극부 들어가서 연극을 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연극을 할 줄 몰랐지. 친구들이 문리대에 많이 있으니까 나도 문리대에 들어간 거지. 그때 연극부원 모집이라는 포스터를 보고 들어간거야.”
학업은 뒷전이고 교수들은 ‘자넨 학문에는 뜻이 없어 보이니 연극부나 가서 살게’ 소리를 들으며 연극에 빠져있었다.
“극 때문에 졸업도 못하고 학교에 있었던 김영일이라는 형이 있었어. 지금 유명한 김지하 형의 본명이야. 그 형이 연출하고 내가 출연하고 <혈맥>이란 작품도 했었고...”
참 불행한 기록이지만, 문학,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 중 가장 돈을 벌기 힘든 장르가 ‘연극판’이다. 2018년 예술인 전수조사에 의하면 연극인의 연수입은 1,800만 원 남짓이니 7-80년대 연극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안 봐도 비디오’다. ‘고학력 배우 심양홍’도 피해 갈 수 없는 지독한 기근 생활, 어떻게 견디었을지 궁금했다.
“생활이 안 되지. 10년 이상 그랬지. 국립극단에 들어간 것이 72년이니까 10년 이상 한 푼도 못 번 거지. 그런데, 그거 4글자 있잖아. ‘술값재천’ 술값은 하늘에 있다 이거야. 그냥 마시기만 하면 됐어 그땐.”
심 동문이 기억하는 연극부의 가장 큰 은인은, ‘박건’이란 인물이다. 우리 학교 동문은 아니고, 경기고 출신인데 당시 연극부원이면서 아버지가 관철동에서 규모 있는 호텔을 경영했던 것.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니 시간이 임박하면 그 호텔 ‘709호’에 다 같이 모여 합숙을 했다. 공짜로 잠만 재워주는 것도 고마울 터인데 호기로운 청년들은 맥주 수십 병과 안주를 룸 서비스를 시켜 놀고 마시고 했던 모양이다.
“민폐가 있었어. 아르바이트도 안 하고 그냥 마시기만 했으니...”
오랜만에 기억에 장난기 어린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재미있는 표정으로 인터뷰를 이어간다.
“결혼은 국립극단 들어가서 했어. 73년도니까 우리 나이로 30이지. 애들이 1남 1녀고”
예술가의 삶을 사는 자식은 누군가 꼭 이어받기 마련이다. 자의든 타의든 성공하는 예술가의 자식은 흔적이라도 남기게 하려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버지의 업을 잇지 않았다.
“연극이나 영화는 안 하고 살짝 경험은 있지. 어려운 직업이라서 이것밖에 할 게 없으면 하라고 했어. 나훈아가 가수가 된 것도 그렇잖아 녹음실에서 청소하고 고생하다가 가수가 아프다고 안 나와서 대신 녹음하는 바람에 가수가 된 거잖아.”
내 인생 가장 후회되는 일은 동지를 규합하지 못한 것
심 동문의 모교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 시절 다른 기억을 질문하니,
“경기고 원서를 빼서 서울고에 넣었어. 그만큼 서울고가 좋았어. 우리 14회잖아. 콤플렉스 없이 달렸지. 서울대 12개 단과 중에서 8개 단과 톱이 서울고였지. 서울대 화공과 톱, 공대 톱, 전국 톱이 14회에서 나왔지. 김유항이라고, 서울고 14회는 대단했어.”
아울러 같이 활동한 서울고 동문 이순재(5회), 오현경(8회), 구자흥(15회), 김철리(23회) 등의 동문들에 대한 칭찬과 고마움도 아끼지 않았다.
“선배님, 하정우가 서울고 동문인 거 아세요?” 했더니 깜짝 놀라며 “용건이 아들인 줄 알았지 서울고 나온 줄 몰랐지”하는 대목에서는 뭔가 씁쓸함이 스쳐 간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제 남은 꿈이 무었인가요?” 라는 질문을 했다.
“남은 꿈이 있다면, 파우스트 연극을 꼭 해보고 싶어. 작품은 글을 써야 하고 명작이 나온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방송은 편집에 의해서 작품이 바뀔 수 있는데 연극이란 건 편집할 게 없는 거야. 연극은 가지고 있는 시와 정열, 철학이 있단 말이야.”
그런데 나이와 주변의 동료들을 생각할 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낭독극’이다. 혼자서 내레이션 하듯이 작품을 소화할 자신이 있다. 심 동문의 꿈이 어떤 행태로든 우리에게 보일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데 심 동문의 뜬금없는 한마디, 가수 김세환의 아버지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공연한 햄릿의 주인공인 연극계 대부 김동원 선생과의 얽힌 일화다.
“김동원 선생이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가 물었데.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뭐라 한 줄 알아? 김 선생이 후학을 키우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하신 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동지를 규합하지 못했다는 게 제일 후회스러워.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을 규합해서 좋은 작품을 많이 했으면 좋았겠다 싶은 거야.”
원로 배우에게 느껴지는 삶에 대한 아쉬움이다. 어느 장르와 어느 업계의 출신이냐를 떠나 70이 넘은 원로 선배에게서 느껴지는 살아온 인생에 대한 소회다.
요즈음 연기활동은 접고 서울고 14회 동기모임 나가고 성남, 용인 서울고 모임에도 나가서 동문들과 즐기는 편이다.
올해 우리 나이 76세, 고령임에도 연극과 드라마로 다져진 목소리는 뚜렷하고 강건함을 보여주었다. 모처럼 예술계 선배와의 품격 있는 인터뷰였다.
현재 공연 하시는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
요즘 연기는 안 하고 연극합니다. <막차탄 동기동창> (이승희 연출, 품바 최성웅과 함께 출연)
글_ 엄덕영(35회) 편집위원 / 사진_ 서덕원(45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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